[기자의눈] 서울시장 후보 내는 게 '책임 정치' 라고요?
[기자의눈] 서울시장 후보 내는 게 '책임 정치' 라고요?
  • 신평택신문
  • 승인 2020.11.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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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헌 개정 전당원 투표 안내 메시지.(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 뉴스1


(서울=뉴스1) 김민성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내년 4월 7일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자당 후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을 3일 마무리했다.

당헌 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헌 개정을 위한 전당원투표 제안문에서 밝혔듯 민주당은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은 우리당 소속 지자체장의 잘못으로 발생했고 이 규정에 따르면 우리당은 후보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민주당은 오늘 '무공천 당헌'인 96조 2항에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결정할 수 있다'는 15글자의 단서조항을 달았다.

당헌 개정 여부에 대한 찬반을 물었던 지난 주말의 전당원투표가 낮은 투표율(26%)에도 불구하고 86%의 찬성률을 기록한 점만 부각시킨 민주당은, 그 투표 결과로 서울·부산시장 공천 가능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고도 해석했다.

전당원투표의 효력을 둘러싼 민주당의 이중적인 해석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긴 하지만, 이번 사안의 본질에 비하면 작게 느껴질 정도이니 길게 말할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번 '무공천 약속 뒤집기' 비판을 대응하는 민주당의 논리가 '책임 정치'라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이낙연 대표 등 지도부와 지도부의 뜻이 담긴 전당원투표 제안문은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며 오히려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주장한다.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도 있다"는 논리도 동원된다.

전당원투표 제안문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완수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해 2021년 재보선 승리는 매우 중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전당원투표는 '답정너' 투표가 됐다.

우선, 정당은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니, 선거 승리가 중요하다는 말은 당연히 옳으면서도, 또 당연히 아무 곳에나 갖다 붙여서 될 말은 아니다. 선거 승리가 중요하니, 오늘 밤 우리 집 대문을 부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책임 정치' 논리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후보 공천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공당의 도리"라는 집권 여당 대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앞으로 어떤 흉악한 범죄로 선출직 공직자가 물러나도 다시 그 자리에 새 후보를 내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즉 책임 정치를 내세우려면 당헌 96조2항은 아예 삭제하는 게 맞다.

물론 그러려면 '5년 전에 문제의 무공천 당헌을 만든 것은 판단 착오였다'거나, '말도 안되는 규정임을 알았지만 인기를 얻어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선 차라리 무공천 당헌에 대해 "정치는 결단하고, 책임지고, 선거로 평가받는 것을 본질로 하는 것인데 이를 과잉금지한 것"(신동근 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자성이 솔직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무공천 당헌'은 삭제되지 않고,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과의 동거를 통해 살아남았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만들었던 '정치 혁신' 당헌도 붙잡고 싶고, 서울시장 선거도 놓치기 싫다 보니 이런 교묘한 방법이 동원됐을 것이다. 양 손에 떡을 쥐고 어느 것 하나 내려놓기 싫은 심정이다.

국민들이 이런 속셈을 모를까. 차라리 이번 당헌 개정에서 무공천 조항을 폐지했더라면 그나마 좀 더 깔끔했을 것이다.

물론 그보다 좋은 수라면 이번 보궐선거 공천을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었다. 민주당 지도부에는 애초부터 없던 선택지로 보이지만 말이다.

선거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유권자들에게 내세울 정치적 명분이 중요하다. 민주당 원로인 '원조 친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의 말이 울림이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는 "만약 (공천을) 안하게 되면 민주당이 외연을 많이 넓힐 수 있다"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1년) 보궐선거에 나올 때 민주당 후보가 아니었다"고 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채 소수정당이나 시민사회쪽 후보를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무공천 당헌을 아예 없애지 않았으니,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 재보선'도 하나쯤 준비할지 모르겠다. 내년 4월 재보선에 서울·부산시장이 아닌 다른 선거 몇 개가 더 붙을 테니 가능할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욕을 먹으면서도 무공천 당헌을 아예 없애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홍보하려는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중앙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11.3/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