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살인자' 발언 문제지만…방역, 정쟁 대상 삼아선 안돼
[기자의눈] '살인자' 발언 문제지만…방역, 정쟁 대상 삼아선 안돼
  • 신평택신문
  • 승인 2020.11.1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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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1.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이형진 기자 =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4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광화문 집회의 주동자는 살인자다"고 밝히자 정치권이 시끌시끌하다.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는 "본인들 지지자가 아니면 국민을 살인자라 부르냐"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노 실장 발언에 대한 야권의 비판은 일견 타당하다.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비서실의 수장으로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의전상 행정부 2인자는 국무총리지만, 대통령비서실장은 사실상 부통령과 다름없다.

국민의 특정 집단을 '살인자'라고 대외적으로 밝히기에는 그 자리가 무겁다. 지지세력만을 위한 정권이 아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노 실장은 답해야 한다. 국민이 살인자라는 말은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반영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야권의 쓴소리가 마냥 옳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서울도심집회 이후 코로나19 사망자가 대폭 증가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수도권 중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이끌었던 두 집단감염,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와 8·15 서울도심집회(광화문집회) 관련 확진자는 각각 1173명, 650명에 달했다. 단일 집단감염으로는 대구·경북 신천지 확산을 제외하고 가장 확진자가 많았다.

방역당국은 5일 서울도심집회 관련 확진자 중 사망자는 10월까지 총 12명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8월 유행 이후 조용한 전파 등을 고려하면 관련 사망자는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

8월 수도권 대규모 유행이 벌어지기 전 7월 한달간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총 19명, 유행이 막 시작됐던 8월 당시도 한달동안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반면 8월 유행으로 인한 사망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했던 9월에는 한달간 누적 사망자가 89명 발생했다. 7~8월 당시 20명가량 발생하던 사망자와 비교해 4배 넘게 증가했다.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5단계까지 격상하며 확진자 수 줄이기를 시도했지만, 수도권 지역의 확산 여파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10월 한달간 사망자도 51명에 달했다. 11월까지도 사망자는 매일 적게는 1명 많게는 4명까지 꾸준히 발생했다.

물론 이 기간 사망자가 모두 서울도심집회 사망자라고 직접 연관 짓는 건 무리다. 서울도심집회 직전인 8월14일 신규 확진자는 이미 100명선을 넘어섰다.

방역당국은 8월 수도권 확산의 원인으로 5월 이후 조용한 확산 탓도 있다고 봤다. 방역완화 조치와 5월 초 연휴가 맞물리면서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후폭풍이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긴장완화 시그널을 보낸 방역당국의 실책도 적지 않다. 아울러 8월 여름 휴가철이 맞물린 것도 확산에 영향을 줬다.

그러나 서울도심집회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집회 참석자들 중 상당수는 방역 협조에 불성실한 태도로 임했고, 집회 참석 사실을 숨기거나 진단검사 등을 거부했다.

무증상 감염 상태에서도 확산이 가능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상 지역사회 내에서는 이들을 통한 조용한 확산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8~9월에는 확진자가 어디서 감염됐는지 알 수 없는 '감염경로 조사 중' 비율이 30%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방역당국이 보수단체 집회만 겨냥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 역시 타당하다 보기 어렵다. 서울도심집회 참석이 예상됐던 사랑제일교회에서 확산이 먼저 시작됐기에, 방역당국은 집회 자제를 촉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집회는 강행됐고, 그나마 수도권에 집중됐던 유행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노 실장의 발언 이후 방역당국의 방역 자체가 정치 쟁점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 실장이) 그런 이유로 해서 얘기한다면 백신 접종을 중단시키지 않은 정은경 질병청장,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 당국자도 살인자로 봐야 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방역당국이 정쟁의 대상이 되면 야권 지지층은 서울도심집회 참석자들처럼 코로나19 방역에 비협조적일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계절성 기온 저하 및 실내 활동 등으로 방역 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과 맞물리면 더 큰 유행으로 다가올 수 있다. 노 실장의 발언이 일부 문제가 있지만, 더 이상 정쟁은 안 된다는 것이다.

노 실장은 4일 국감 자리에서 발언 직후 "국민을 대상으로 살인자라고 한 적 없다. 의원들께서 '도둑놈'이라 해서 도둑보다는 살인자라고 했는데 저도 과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