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우리사회가 '가방 속 감금 아이'에게 속죄하려면
[기자의 눈] 우리사회가 '가방 속 감금 아이'에게 속죄하려면
  • 신평택신문
  • 승인 2021.02.0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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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계모가 10일 오후 충남 천안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0.6.10/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기자는 범죄 사건을 어느 선까지 보도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모방 범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독자가 심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사회적 주목을 받는 사건의 내용을 편집 없이 그대로 보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19금'이 아니라 '39금' 딱지를 붙여 보도해야 할 것 같은 잔혹한 범죄 사실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발생한 '천안 의붓아들 가방 감금 살인 사건'이 딱 그랬다.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한 가정집에서 당시 여덟 살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13시간 동안 감금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알려졌다시피, 가해자는 아이의 계모였다.

아동학대 사건이 올해 정초부터 논란이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은 범행 동기와 수법, 그 과정이 끔찍해 이를 접하게 될 불특정 다수 독자의 정서와 심리 상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 아동은 계모를 '엄마'라고 불렀다. 한 살 터울 동생이 평소 체벌을 일삼는 계모와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친모에게 보내진 것과 달랐다. 피해 아동은 계모와 함께 살며 친근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계모는 피해 아동을 습관적으로 폭행했다. 그래도 아이는 계모를 '엄마'라고 불렀다.

키 132㎝, 체중 23㎏의 피해 아동은 자신의 절반도 안 되는 가방(가로 44㎝, 세로 60㎝, 너비 23㎝) 안에서 호흡 곤란을 호소할 때도 '엄마'를 찾았다.

두 사람 사이에선 '가스라이팅'(gas lighting) 흔적이 발견된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지배하는 심리적 학대 행위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면박을 주거나 혼을 내 그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뒤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정 폭력의 주요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계모는 성숙한 판단이 힘든 이들도 범행 과정에 개입시켰다. 보편적인 시민 상식과 아동 인권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어서 기자는 해당 대목을 '있는 그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검찰은 "최대 160kg의 무게로 수 분 동안 뛰며 가방을 누르고 가방 안으로 미용기기 온풍을 넣었다"고 당시 상황을 공소장에 적시했지만 이는 언론이 상당 부분을 자체적으로 순화한 표현이다.

살인, 특수상해, 상습아동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계모는 지난달 29일 항소심에서 원심(징역 22년)보다 무거운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해온 계모는 이에 불복해 최근 대법원에 상고했다.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답은 제시돼 있다. 천안 계모 사건에 이어 '양천 입양아 학대사건'이 잇달아 거센 논란으로 번지면서 경찰은 학대예방경찰관(APO) 제도를 손질했고 신고 대응 조치도 강화했다.

국회가 처리해야 할 아동학대 방지 법안만 40여개에 달한다.

대책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것을 실현한 의지가 필요하다. 꾸준한 관심만이 대책을 현장에 안착시켜 학대 살인 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숨진 아동에게 속죄하는 방법은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