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국은행 '남산 딸깍발이'는 어디로 갔나
[기자의 눈] 한국은행 '남산 딸깍발이'는 어디로 갔나
  • 신평택신문
  • 승인 2021.02.0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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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한국은행 본관으로 사용됐던 화폐박물관 건물. © News1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오늘날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뉜다면 조선시대 한양은 남촌(南村)과 북촌(北村)으로 나뉘었다. 노론 위주의 힘 있는 관료들이 거주한 북촌과 달리, 청계천 이남 남산자락의 남촌은 재야 선비들이 모여 살며 실학을 꽃피워낸 본거지였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돈이나 출세에 연연하지 않는 고지식한 선비를 뜻하는 '딸깍발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후 1909년 남촌에는 일제식민지 시절 조선은행이 들어섰고, 1950년 이 자리에 한국은행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 설치돼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우연찮게도 옛적 딸깍발이의 본거지에 한은이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한은을 두고 '남산 딸깍발이'라는 별칭이 붙었다니, 융통성이 부족하더라도 정권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을 소신있게 이끌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최근 한은의 행보를 보면 과연 한은이 딸깍발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조직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정권을 흔드는 뇌관으로 떠오른 부동산과 관련해 한은이 연구에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전(前) 정부들이 줄줄이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역대 정권의 '아픈 손가락'인 부동산에 대해 한은이 각종 통계를 내며 가타부타 언급하는 것이 물론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게다가 한은의 고유업무인 통화정책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내놨다간 물가와 금융안정이라는 정책목표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기가 한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역대 최고치를 이어갈 정도로 주택시장이 과열되고 금융시장 불안마저 우려됐던 지난해 한은이 우리나라 부동산 관련 심층 연구보고서를 단 2건만 내놓은 것은 문제가 있다.

한은의 금통위원들조차 주택시장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정도다. 지난해 11월26일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은의 한 금통위원은 회의에서 "당행이 전 세시장을 포함한 주택시장의 현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보다 정치(精緻·정교하고 치밀함)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관계당국과 공유하는 등 정책에 대한 조언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 1월15일 열린 금통위 회의에서도 "최근 주가와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이 과정에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은의 관련부서 관계자는 "최근과 같은 저금리 국면에서는 통화정책의 자산가격에 대한 영향이 확대될 수 있는 점에 유념하면서 관련 연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한은은 주택시장 연구 계획을 묻는 윤 의원의 서면 질의에 "진행 중인 연구가 없다"거나 "시의성 있는 주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면피성 발언만 내놨다. 금통위원들의 잇따른 지적에도 한은이 구체적인 연구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통화정책을 일임한 기관이자 독립기구 한은이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곁불이나 쬐려 한다는 냉소적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법이 한은의 자주성을 명시하고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정부기관이나 법인, 개인에 요구해 자율적으로 통계를 구할 수 있도록 각종 권한을 쥐어준 것이 무색할 정도다.

'남산 딸깍발이' 정신이 그립다. 한은의 딸깍발이 정신이 오롯이 지켜지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