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누구나 '묻지마 폭행'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기자의 눈] 누구나 '묻지마 폭행' 피해자가 될 수 있다
  • 신평택신문
  • 승인 2021.05.0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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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DB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뭘 쳐다봐?"

술 취한 남성이 필자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몇 주 전 밤 10시쯤 도심 1호선 지하철역 안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40대로 보이던 남성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라고 재차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그와 눈이 마주친 게 전부였다. 일촉즉발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인 줄 착각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는 필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얼마 전 만난 취재원 A에게 이 일화를 들려줬다. 40대 초반인 A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A는 술집에서 다른 테이블 20~30대 보이는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상대는 A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뭘 쳐다보나"라며 위협했다.

필자가 아는 취재원 가운데 성격이 가장 좋은 A는 기지를 발휘했다.

"선생님 스타일이 너무 좋아 제가 실례인지 모르고 좀 살펴봤네요. 죄송합니다."

상대는 피식 웃더니 도발을 멈추고 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최근 뉴스를 유심히 본 독자는 이런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70대 노인을 무차별 폭행한 20대 남성이 최근 검찰에 구속 송치됐기 때문이다.

신장 180~190㎝로 추정되는 그의 폭행에 노인은 안구 주변이 함몰되고 팔 여러 곳이 골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 남성에게는 살인 미수 혐의가 적용됐다.

이 사건을 접한 순간 필자는 "뭘 쳐다보냐"며 공격 태세를 갖추던 지하철역 안 남성이 떠올랐다. 솔직한 생각이 들었다. 필자와 A는 비교적 건장한 편이고 아직은 젊다는 소리를 듣는데 만일 그렇지 않고 왜소했다면 상대가 사과만 받고 순순히 물러났을까.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사건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묻지마 폭행'이란 단어만 입력해도 관련 기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해자와 특별한 원한관계 등이 없는 불특정 피해자가 표적이 된 게 특징이다.

본인의 마음 속에 있는 불만과 분노를 외부 탓으로 돌리고 자신이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 약자에게 주로 폭발하는 묻지마 범죄 또는 증오 범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런 범죄의 심각성은 누구나 알지만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뾰족한 대책을 마련했는지는 확신하지 못 하겠다. 미국과 달리 '묻지마 폭행''혐오 범죄' 관련 정확한 통계가 없어 제대로 된 대책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범죄의 근본적인 배경보다 범죄 행위의 선정성과 폭력성에 주목하는 경향 때문에 정부도 대책 마련에 소홀하지 않나 싶다.

범죄 행위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범죄를 잉태한 사회 환경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해도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범죄화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어떤 범죄든 사회 구조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묻지마 폭행' 가해자가 왜 분노와 증오를 품게 됐는지, 어떤 이는 눈이 마주치면 목례하며 예를 표현하는데 그는 왜 폭력을 행사하는지, 범행 당시 그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사건 발생 전 그의 폭력을 차단할 만한 치안 장치는 없었는지 심도 있게 연구하고 적절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폭력에 노출된 사회에선 호신술이라도 배워 자신을 보호해야하건만 현대인의 팍팍한 삶은 스스로를 단련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