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한국 배터리와 미·중 전기차 경쟁
[김수종 칼럼] 한국 배터리와 미·중 전기차 경쟁
  • 신평택신문
  • 승인 2021.06.1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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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서울=뉴스1) =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다. 지금 이 경쟁에서 중국이 앞서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18일 미시건 주에 있는 포드자동차 공장을 찾아 연설하면서 꺼낸 말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3일 전이다. 이튿날 CATL과 비야디(BYD) 등 중국의 배터리 및 전기차 관련 주식값이 일제히 올랐다.

중국이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에서 앞서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입으로 이를 확인하자 일어난 주가 랠리"라는 게 인민일보 자매지 '글로벌타임스'의 해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전기차와 배터리를 겨냥한 언급은 몇 차례 더 있었다. 4월 29일 취임 100일 의회 연설에서 "미국 노동자가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에서 앞서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고, 차량반도체 부족으로 세계 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던 5월엔 한국의 삼성을 포함한 18개 대기업 대표를 초청한 온라인 대책 회의에서도 반도체와 함께 배터리를 '오늘날의 인프라'라고 지목했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눈길을 끌었던 일 중의 하나가 한국의 4대 기업 대표들이 미국에 들고 가서 풀어놓은 돈 보따리였다. 삼성은 반도체, 현대는 전기차, LG와 SK는 배터리 등 미국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건설하겠다며 밝힌 총 투자 규모가 44조 원이다.

44조 원, 어림잡아 미국 돈 400억 달러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인 평균 국민소득(GDP)이 6만5000 달러 정도이니 1년 동안 미국 평균국민소득에 해당하는 연봉을 줄 수 있는 미국의 일자리 약 61만5000 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첨단 양질의 일자리다. 일단 시설이 가동될 때 파급효과는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 영역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입이 벌어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들 4대 기업 대표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게 한 것, 회담 결과에 만족한 문 대통령이 귀국 후 이들을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융숭한 대접을 한 것이 44조원의 위력이 아닌가 싶다.

워싱턴 정상회담 뉴스를 보다가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우선 한국이 정말 큰 나라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긴 하지만 세계 전략을 밀고 나가는 데 힘이 부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서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팍스 아메리카'를 구가하던 30년 전보다 미국의 부(GDP)는 명목상 3배 증가했지만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정치적 입김 확대로 미국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상원외교위원장과 8년의 부통령을 경험하며 중국의 발전을 눈여겨 지켜봤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미래에 대한 초조감을 갖게 된 게 아닐까.

미국은 지금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에 직면했지만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기술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터득한 중국은 기후변화 시대에 새롭게 떠오르는 전기차 분야에서 기회를 노리며 지난 10여 년 간 준비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메이커들은 내연기관 자동차에 안주해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이다.

중국에게 기회가 다가섰다.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2015년의 파리협정 체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 그리고 2021년 미국의 바이든 정부출범 등 일련의 상황변화로 전기차가 시대의 바람을 타고 있다. 작년 중국의 전기차 판매 대수가 130만 대인데 비해 미국에선 그 4분의 1인 33만 대가 팔렸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 대수는 나머지 나라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GM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메이커들이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 생산을 거의 중단할 것 같다. 전기차 시장 확대는 명약관화하다. 가장 보수적인 시장분석 회사들도 2030년 전기차 판매 시장이 지금보다 8배 늘어난다고 예측하고 있다. 배터리 시장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심장이다. 안전성, 주행거리, 충전시간이 배터리 기술의 지향점이다. 여기에 맞춘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은 리튬이온 배터리가 가장 보편적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에는 자동차 메이커가 엔진을 자체 제작했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전문회사가 개발 생산하고 있다.

배터리 공급 시장은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세 나라가 장악하고 있다. 특히 CATL 등 중국 배터리 기업이 전 세계 배터리 셀(기초부품) 생산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은 LG화학을 선두로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세계 10위권에 있을 정도로 배터리 강국이다. 정부의 관심보다는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시장전략에 의해 이룬 성과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의 강점은 시장규모와 중국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지만 이것이 약점이기도 하다. 유럽은 중국 배터리 의존에서 벗어나려고 독자적인 배터리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산업패권을 의식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렇게 배터리 생산과 공급은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배터리 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기회이자 위기다. 미국과 유럽의 중국 견제 심리는 유리한 측면이지만, 미국과 유럽이 확대되는 배터리 시장을 겨냥하고 독자적 배터리 산업 육성에 나서면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전기차 시장 확대 속도를 감안하면, 한국 배터리 산업에겐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배터리 산업은 첨단 소재 기술혁신이 생명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차세대 기술이며 이에 대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과제는 연구 투자와 자동차메이커들과의 공급망 구축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산업정책과 경제 외교다. <뉴스1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