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가족경영 글로벌 상장회사
[김화진칼럼] 가족경영 글로벌 상장회사
  • 신평택신문
  • 승인 2019.06.0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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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필자는 기업지배구조를 이제 한 25년 동안 공부하고 강의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 작성한 해외 기업 사례연구 파워포인트가 4만 페이지가 넘는다. 그러다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기업으로 출발했던 글로벌 대형 상장회사를 누가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결론이다.

가족기업으로 출발한 회사에서는 기업이 공개되고 글로벌 회사가 되어도 가족 중 누군가가 경영권을 승계한다. 문제는 이제 한국 회사들이 너무 크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첫째, 우수하고, 둘째, 건강하고, 셋째, 회사 일을 좋아하는 인재가 과연 한가족 안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의문이 나온다.

그래서 가족이 경영을 승계해 가더라도 전문경영인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가족과 전문경영인 사이의 관계설정이 과제로 등장한다. 해외에서는 양자의 완벽한 궁합을 자랑했던 피아트 사례가 있는가 하면 양자 간에 권력투쟁이 빈번했던 포드자동차 사례도 있다. 엑슨모빌에서는 록펠러 후손들이 모두 힘을 합쳐 전문경영인 틸러슨과 대치해 패배하기도 했다. 포르쉐에서는 가족간의 갈등구조 내에서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큰 존재감을 발휘하다가 결국 적대적 M&A를 발생시켰다.

BMW는 다임러에 넘어갈 뻔했을 때 크반트 패밀리가 노조와 잘 소통하고 위험한 투자를 감행해서 독립을 유지한 이례적인 사례다. BMW는 그 후로도 계속 가족기업으로 남아 있다. 가족이 경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가족과 외부인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가족은 위쪽, 아래쪽으로 책임 의식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면이다. 전문경영인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성공이든 실패든 자기 자신으로 끝난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가족은 자녀의 장래를 포함해 모든 것을 잃지만 전문경영인은 자리와 체면을 잃을 뿐이다. 가족과 전문경영인은 세대 차이도 있다. 경험이 다르고 장래 인생계획이 다르다. 이 점이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

전문경영인은 자녀를 회사와 관계없이 큰 사회 안에서 키우지만 가족은 대개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회사 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집안에서도 지속적으로 회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주입받는다. 여기서 잘못되면 왜곡된 ‘주인’의식이 생기에 되는데 최악의 경우 철없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고 뭐든 잘해주려는 회사 사람들을 마치 하인처럼 여기게 된다.

하버드의 역사학자 란데스는 3대를 내려온 가족기업 출신 글로벌 회사들을 다이너스티(Dynasties)라고 부르는 책을 썼다. 란데스에 의하면 가족기업의 약점은 아들들이 회사에서 언제든지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젖어서 자신을 발전시키거나 성과를 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왕자병)과 가업에서 소외된 딸들이 문득문득 전투적으로 돌변하고 거기에 배우자가 가세해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족들 간 불화와 상속도 큰 문제다. 상속은 M&A 못지않게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에서는 큰 사건이다. 불화에 상속이 겹치면 퍼펙트 스톰이 된다. 구치가 그래서 몰락했다. 사모펀드가 사들여 성공적으로 재기했지만 이름만 구치고 구치 패밀리와는 이제 아무 관련이 없다.

전문경영인은 회사의 역사에서 물려받은 것 없이 자신이 쌓은 것만 있다. 가족 구성원에 비해 이름, 중량감, 구심력 면에서 떨어진다. 가족은 여럿이지만 전문경영인은 혼자다. 사회적 자산 면에서 힘이 부친다. 우리와는 달리 해외의 많은 가족기업들은 아예 회사 이름과 가족의 이름, 따라서 회장의 이름이 같아서 가족 구성원이 회사 안팎에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2009년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사태로 미국 의회가 청문회를 개최했을 때 도요다 아키오 회장이 직접 불려 나왔다. 사람들은 이름이 바로 그 도요타인 회장이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사과를 연발하는 광경을 생생하게 보았고 그 역할은 가족이 아닌 다른 누가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었다.

캐나다 가족기업의 역사를 깊이 연구한 저널리스트 고든 피츠는 가장 성공적인 가족기업은 가족이 전문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들은 살짝 옆으로 비켜서 있는 기업이라고 했다. 이 결론이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가 포드다. 경제위기 때 창업자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는 앨런 멀러리를 CEO로 영입하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 비켜섰다. 5년 동안 회사에서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고 가족들을 설득해 멀러리를 전폭 지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관련기사: 미국 자동차 3사의 금융위기 탈출기(2): 포드).

가족이 전면에 나서 있지만 사실상 옆으로 비켜 서 있는 기업은 스웨덴의 발렌베리다.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사모펀드형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방식으로 그룹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족의 강점과 전문경영인의 장점을 결합하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과 한계를 인식, 인정하고 서로 존중, 지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포드와 도요타의 사례처럼 가족과 전문경영인 중에 회장이 번갈아 나오면서 회사가 성공적으로 지속가능해진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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