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KSS 창업자의 ‘직원이 주인인 회사’ 선언
[김수종 칼럼] KSS 창업자의 ‘직원이 주인인 회사’ 선언
  • 신평택신문
  • 승인 2019.06.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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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성성한 80대의 노신사가 그보다 나이가 60여 년 더 어린 대학생 열댓 명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의 주제는 이 노신사가 지난 4월 펴낸 자서전 ‘직원이 주인인 회사’였다.

이 자서전은 1970년 일본에서 빌려온 낡은 배 1척으로 해운회사를 창업하여 50년 동안 한국 기업풍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독특한 ‘주식회사 모델’을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를테면 당시 관행화된 선원밀수를 근절시키고, 비자금과 리베이트를 없애 투명한 회사로 만들었으며,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체제에 맡겼고,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일들이다.

이미 책을 읽은 대학생들에게 노신사가 1시간 동안 부연해서 강조한 부분은 이익공유제였다. 즉 고정급 보너스제를 없애고 회사 이익에 연동해서 종업원에게 일정한 배당을 해줬고, 그 결과 종업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되어 회사가 더 잘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노사 공동운명체를 만드는 것이 기업경영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 도움을 된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지난 5월 18일 제주대학교 캠퍼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생들과 마주 앉은 노신사는 ㈜KSS 고문이자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규씨다. KSS는 가스선, 화학선, LNG선 등 거의 30척에 이르는 특수화물선을 부리며 2018년 매출 2000억 원 이상 올린 강소기업(强小企業)이다. 바른경제동인회는 투명한 기업경영 운동을 하자는 취지로 25년 전 그가 주축이 되어 만든 일종의 경제NGO다. 이 운동으로 그는 한때 ‘빨갱이’라는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2003년 회사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은퇴하여 한라산 기슭 조용한 곳에서 살고 있다. 그의 거소는 조용하지만 박 회장의 생각은 조용하지 않다. KSS를 비롯하여 한국 기업에, 크게는 한국자본주의 체제에 뭔가 긍정적 자극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4월 발행된 그의 자서전 ‘직원이 주인인 회사’도 바로 그런 노력의 한 단면이다.

이날 박 회장이 마주한 젊은이들은 HRA(Human Renaissance Academy) 학생들이다. HRA는 제주대와 민간단체의 협력으로 1년 동안 대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히고 케이스스터디 교육과 봉사활동을 통해 리더십 훈련을 쌓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강연이 끝난 후 학생들의 독후감과 질문이 쏟아졌다. 학생들의 입에서 가장 절절하게 쏟아져 나온 질문의 요지는 ‘아들이 셋씩이나 있는 기업 오너가 왜 회사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기업대물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국의 기업풍토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기업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의아함과 신선함이 혼재된 반응이었다. 재벌 3세들의 갑질 논란을 보고, ‘금수저’ ‘흙수저’의 이분법적 냉소주의 분위기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심리 상태로 볼 때 박 회장은 한편 멋져 보이고 한편 이상한 기업인이다.

박종규 회장은 경영세습을 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체제로 300년을 장수하는 기업을 만드는 꿈을 꾸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박 회장이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은 1955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닐 때,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를 본받고 싶다는 영감이 떠오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 기업 풍토를 지배하는 “주인 없는 회사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념을 그 스스로 단절하고 싶었다.

박 회장은 KSS에서 경영세습을 단절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회사가 장수하려면 회사를 잘 이끌어나갈 통찰력을 가진 전문경영인, 즉 사장이 나와야 한다. 대주주인 박 회장은 사장을 지명할 권한이 있다. 그가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지명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그 권한을 자신이 행사하지 않고 사장추천위원회를 만들어 비밀투표로 뽑도록 정관에 정했다.

또 이렇게 선출된 사장이 독재경영으로 흐르면 안 된다. 좋은 사장을 뽑아야 하고, 그가 독재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박 회장은 그 견제 장치를 사외 이사에서 찾았다. 사외 이사의 숫자가 사내 이사보다 더 많게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 의장은 사외 이사가 맡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7명의 사장 추천위원회 위원 중 4명을 사외 이사가 겸하도록 했다. 전임사장이 후임 사장 선발에 마음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박 회장은 경영일선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었지만, 대주주로서 회사 틀을 건전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되도록 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의 자서전 속에는 ‘자식에게도 물려주지 않은 회사,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시스템으로 굴러가야 한다’는 비장함이 묻어 있는 것 같다. 박종규 회장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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