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UN총회서 세계 지도자들 질타한 소녀
[김수종 칼럼] UN총회서 세계 지도자들 질타한 소녀
  • 신평택신문
  • 승인 2019.10.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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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뉴스메이커는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하며 ‘거짓말’ ‘배신’ ‘악마’ ‘용서 못해’라는 말을 당돌하게 거침없이 날린 스웨덴의 16세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였다. 그는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보름 이상 요트를 타고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바람과 태양광만 이용한 요트를 탔다.

“여러분들은 빈말을 하면서 내 꿈과 동심을 앗아갔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얘기하는 것은 ‘돈’과 ‘경제성장’뿐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여기 와서 충분히 했다고 말합니까? 젊은 세대가 여러분의 배신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미래 세대의 눈이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쪽으로 가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3분 연설이 끝나자 유엔총회장은 박수와 고함이 터졌다. 이날 유엔총회는 기온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막자는 파리기후협정을 실현하기 위해 특별히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Climate Action Summit)다. 아마 많은 대통령들을 비롯한 각국 대표들이 이 소녀의 외침을 감명 깊게 들었을 것이다. 산유국 대표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유엔총회 회의장 밖의 현실은 툰베리 소녀의 소망과는 딴판이다.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를 “중국이 꾸민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며 2017년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잠시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언론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방문을 놓고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고 평했다. 회의장을 떠나면서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나는 깨끗한 공기와 깨끗한 물을 신봉하는 사람이고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토를 달았다. “각국은 스스로 해야 한다.” 파리기후협정이나 기후행동정상회담이 아직도 못마땅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는 동안 그레타 툰베리는 몇 발짝 뒤에서 트럼프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트럼프는 툰베리 소녀의 연설에 대한 논평을 트위터에 남겼다. “그녀는 밝고 멋진 미래를 기다리는 행복한 소녀 같다. 보아서 좋았다.” 툰베리의 환경 메시지는 아예 무시하는 태도다. 어쨌든 툰베리와 트럼프는 유엔 총회에서 극명한 대비가 됐다.

그레타 툰베리는 작년에 이미 환경운동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2018년 학교에 가지 않고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고 동네 아이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이 운동이 여러 나라로 확산되자 ‘타임’지 커버스토리 주인공이 됐다.

툰베리가 환경에 눈을 뜬 것은 여덟 살 때부터다. 11세 때 사회성발달 장애 증세인 ‘스퍼저스신드롬’ 진단을 받았지만, 그는 이제 이 증세를 당당히 밝히며 그 증세가 오히려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의 환경운동 강도는 부모를 움직일 정도로 높아서, 식구들이 비행기 여행과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만들어 준수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스웨덴에서 유명한 배우이며,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다.

툰베리의 행동주의 환경운동이 학생들에게 영감을 일으키면서 어른들에게 행동하라는 캠페인이 유럽과 미국에서 퍼져 출판과 문화 시장에 변화를 유발하고, 이런 변화에 정치인들이 예민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일컫는 새로운 용어 ‘그레타 툰베리 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세상일에는 찬반이 엇갈리게 마련이다. 툰베리의 환경운동방식을 놓고 냉소하는 것은 비단 트럼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석유수출국 지도자들도 냉담하다. 서구의 지성인들의 비판도 있다. 툰베리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접근법이 서구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복잡성과 충돌하며 부작용을 낳는다는 논지다.

그러나 작금의 기후변화는 우려할 속도로 진행되는 것을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파리기후협정의 취지에 유엔회원국 195개 나라가 동의한 상태다. 30년밖에 안 남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은 더 늘어나고 있다.

미래를 살아갈 10대 학생들이 ‘그레타 툰베리 효과’에 쉽게 동조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나 아라비아 왕자일지라도. <뉴스1 고문>